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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산업 내 노동 구조와 제작 환경의 불평등

by 도도진진 2025. 10. 6.

 

화려한 스크린 속 영화는 한순간의 예술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수백 명의 노동이 존재한다. 조명, 음향, 미술, 분장, 스태프 등 그들의 손끝에서 영화가 완성되지만, 현실은 그만큼 아름답지 않다. 영화 산업은 여전히 불안정한 계약 구조, 과중한 노동, 임금 불평등 문제로 고통받고 있다. 이번 글에서는 영화 현장의 노동 현실을 구체적으로 살펴보고, 보다 공정하고 지속 가능한 산업 구조를 만들기 위한 방안을 모색해본다. .

영화 현장의 노동 현실

관객이 보는 영화는 완성된 결과물일 뿐이다. 하지만 한 편의 영화가 만들어지기까지는 평균 200명 이상의 스태프가 참여한다. 촬영 현장에서는 감독이나 배우만 주목받지만, 사실 영화의 대부분은 스태프의 손에서 태어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 노동자들의 현실은 늘 불안정하다.

한국 영화계에서는 ‘프로젝트형 계약’이 일반적이다. 영화 한 편이 끝나면 계약도 함께 끝난다. 다음 작품이 언제 있을지도 모르는 불확실한 상황 속에서, 스태프들은 생계를 위해 여러 현장을 전전한다. 정규직 개념이 없기 때문에 고용 안정성은 사실상 제로에 가깝다.

게다가 영화 현장은 여전히 장시간 노동이 만연하다. 하루 12시간 이상 촬영은 기본이고, 야간 촬영이 이어지면 20시간을 넘기는 경우도 많다. 이런 강도 높은 노동에도 불구하고 수당이나 휴식 보장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일당 체계로 일하는 스태프들은 하루를 쉬면 바로 수입이 끊기기 때문에, 건강이 악화돼도 촬영장을 떠나지 못한다.

이런 구조 속에서 영화 산업은 겉으로는 ‘창의적인 예술 산업’처럼 보이지만, 내부에서는 여전히 20년 전과 다를 바 없는 ‘노동 집약 산업’으로 남아 있다.

불평등한 구조

영화의 예산은 커지고 있다. 100억 원이 넘는 대형 프로젝트도 흔하다. 그러나 이 예산의 대부분은 스타 배우 출연료와 마케팅 비용으로 쓰인다. 현장 스태프의 임금은 예산 상승과 무관하게 거의 제자리다. 실제로 한 조명 팀 스태프가 받는 월 수입은 200만 원 수준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 영화의 흥행 성적이 아무리 좋아도 스태프에게 돌아오는 것은 없다.

이런 불평등한 구조는 오랫동안 ‘당연한 일’로 여겨져 왔다. 영화는 예술이고, 현장은 원래 힘든 곳이라는 말로 모든 것이 정당화되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 영화의 완성도는 배우나 감독만의 결과물이 아니다. 보이지 않는 노동자들의 노력이 없었다면 어떤 명장면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여성 스태프나 신입 인력에게 가해지는 차별도 여전히 문제다. 남성 중심의 현장 문화 속에서 여성 스태프들은 체력이나 역할의 문제로 배제되기도 하고, 성차별적 발언을 경험하기도 한다. 신입 스태프는 ‘배워야 한다’는 이유로 장시간 노동을 감내하며, 심지어 무급 인턴 형태로 일하기도 한다. 이러한 불평등이 구조화된 산업은 결코 건강할 수 없다.

열정의 한계

영화계 종사자들 사이에는 오래된 말이 있다. “영화는 열정으로 버틴다.” 하지만 이제 그 말은 더 이상 미화로 들리지 않는다. 열정만으로 버텨야 하는 산업은 지속될 수 없다. 젊은 인재들이 영화 현장을 떠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최근 몇 년간 영화 관련 학과를 졸업한 인원 중 실제로 영화 현장에 남는 비율은 30%가 채 되지 않는다. 이유는 단순하다. 노동 강도에 비해 임금이 낮고, 미래가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실은 결국 산업 전체의 퀄리티 하락으로 이어진다. 숙련된 스태프가 떠나면 현장은 다시 미숙한 인력으로 채워지고, 작업의 효율과 완성도는 떨어진다.

노동 환경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영화 산업은 스스로 기반을 무너뜨리게 된다. 기술과 예술이 결합된 산업일수록 숙련된 노동이 필수적인데, 지금의 구조는 그 숙련을 유지하기 어렵게 만든다.

시스템의 변화

문제 해결의 핵심은 ‘개인의 노력’이 아니라 ‘시스템의 변화’다. 영화는 프로젝트 단위로 움직이기 때문에, 현장마다 조건이 달라진다. 따라서 법적 제도와 표준 계약이 절실하다. 영화진흥위원회에서 제시한 표준 근로계약서는 이미 존재하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우선 모든 스태프가 표준 근로계약서를 의무적으로 작성하도록 하는 법적 장치가 필요하다. 또한 근로시간 제한과 휴식 의무 조항이 현실적으로 적용되어야 한다. 단순히 문서상의 규정이 아니라, 이를 감독하고 위반 시 제재할 수 있는 기구가 운영되어야 한다.

두 번째는 임금 체계의 투명화다. 영화 예산의 사용 내역을 공개하고, 일정 비율 이상을 스태프 인건비로 책정하도록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 예산의 대부분이 배우와 마케팅에 집중되는 구조는 산업의 불균형을 고착화시킨다. 공정한 분배 없이는 산업의 지속 가능성도 없다.

세 번째는 장기 고용과 복지 제도의 도입이다. 제작사 단위로 스태프를 정규직 혹은 장기 계약직 형태로 고용하는 시스템이 마련되어야 한다. 현재처럼 매 작품마다 일용직 형태로 고용하는 구조는 안정적인 경력을 쌓을 수 없게 만든다. 일정 기간 이상 근무한 스태프에게는 의료, 보험, 퇴직금 등의 복지가 보장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현장의 문화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 감독이나 제작자가 절대적인 권력을 행사하는 구조에서는 건강한 협업이 어렵다. 영화는 집단 예술이다. 감독이 중심이 되더라도, 스태프가 존중받는 환경이 되어야 한다. 존중이 곧 품질이다.

결론

영화는 집단 예술이다. 하지만 그 집단의 절반 이상은 여전히 이름조차 남지 않는다. 제작비 수백억 원이 투입되는 현장에서도, 누군가는 하루에 두세 시간만 자고 다시 카메라를 든다. 우리는 그들의 노동 위에 세워진 영화를 소비하고 있다.

이제 영화 산업은 열정에 기대는 시대를 끝내야 한다. 정당한 대가와 안전한 환경이 보장될 때, 진짜 창의성이 나온다. 노동이 존중받는 현장, 스태프가 꿈을 꿀 수 있는 산업, 그것이야말로 한국 영화가 세계 속에서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