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T 플랫폼이 빠르게 확산되면서 극장은 전례 없는 위기를 맞이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관객의 시선은 온라인으로 이동했고, 극장은 한때 텅 비어버렸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이들은 극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영화의 온도’를 잊지 못한다. 이 글에서는 OTT가 만들어낸 영화 산업의 변화 속에서 극장이 나아가야 할 현실적 방향을 탐구해본다.
OTT의 등장과 영화 소비 방식의 변화
불과 10년 전만 해도 ‘영화는 극장에서 보는 것’이 당연했다. 하지만 넷플릭스, 디즈니플러스, 왓챠, 쿠팡플레이 같은 OTT 서비스가 등장하면서 그 공식은 완전히 바뀌었다. 관객은 더 이상 상영 시간을 맞추기 위해 서둘러 극장에 가지 않는다. 출퇴근길 지하철 안에서, 잠들기 전 침대 위에서, 누구나 원하는 시간에 영화를 본다. 기술의 발전이 관람 패턴을 바꾸었고, OTT는 이제 ‘하나의 선택’이 아니라 ‘새로운 표준’이 되었다.
OTT의 가장 큰 강점은 접근성과 다양성이다.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를 한 달 구독료로 무제한 시청할 수 있고, 시공간의 제약이 없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사람들은 대면 환경을 피하면서 OTT로 자연스럽게 이동했다. 그 결과 극장은 급격히 관객을 잃었고, 영화 산업의 중심축이 온라인으로 이동했다. 흥행 기준도 바뀌었다. 예전에는 박스오피스 1위가 영화의 성공을 의미했지만, 지금은 플랫폼 내 조회 수나 구독 유지율이 더 중요한 지표가 되었다.
OTT가 제공하는 개인화된 추천 시스템 또한 관객의 취향을 세분화했다. 알고리즘은 사용자의 시청 이력을 기반으로 맞춤형 콘텐츠를 제시하고, 관객은 새로운 영화를 ‘찾기보다 제시받는’ 형태로 소비한다. 이런 변화는 편리하지만, 동시에 극장의 존재 이유를 다시 묻게 만들었다.
극장의 위기와 본질
OTT의 확산으로 극장이 위기를 맞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곧 종말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이 시기를 통해 극장은 자신이 무엇을 제공해야 하는지를 다시 성찰하게 되었다. 극장은 단순히 영화를 상영하는 공간이 아니다. 사람과 사람이 한 공간에 모여 ‘공유된 감정’을 느끼는 경험의 장소다.
스크린 앞에서 수백 명이 동시에 숨을 죽이고, 한 장면에서 함께 웃거나 울 수 있는 곳은 극장뿐이다. 그 감정의 에너지는 집에서 작은 화면으로 느낄 수 없는 것이다. 바로 이 ‘집단적 감정의 교류’가 극장이 가진 고유한 가치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극장은 여전히 여러 문제에 직면해 있다. 대형 멀티플렉스의 독과점 구조, 티켓 가격 상승, 관객 감소로 인한 수익성 악화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젊은 세대일수록 영화관보다는 OTT를 선호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영화 관람이 하나의 ‘일상적 문화’에서 ‘특별한 이벤트’로 바뀐 셈이다.
그렇다면 극장은 이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 단순히 관객을 되찾는 것이 아니라, OTT 시대에 맞는 새로운 가치를 제시해야 한다.
극장의 생존 전략 – 경험의 공간으로의 전환
극장이 살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자신을 ‘경험의 공간’으로 재정의하는 것이다. OTT가 편리함을 무기로 삼는다면, 극장은 ‘감각적 체험’을 무기로 삼아야 한다. 이미 일부 극장은 이런 변화에 대응하기 시작했다.
CGV의 스크린X, 롯데시네마의 수퍼플렉스, 메가박스의 더 부티크 프라이빗 같은 프리미엄 상영관이 그 예다. 단순히 영화를 보는 것이 아니라, 몰입감 있는 사운드와 좌석, 조명, 향기까지 설계된 환경 속에서 ‘공연처럼’ 영화를 감상하는 것이다. 관객은 단순한 소비자가 아니라 ‘참여자’로 변화한다.
또한 극장은 이제 ‘복합 문화 공간’으로 확장되고 있다. 최근 일부 극장은 영화 상영 외에도 전시회, 클래식 공연, 토크 콘서트, 영화 제작 클래스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이는 극장이 단순히 영화를 소비하는 곳이 아니라, 문화를 경험하고 공유하는 플랫폼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신호다.
그리고 무엇보다 극장은 ‘사람’을 다시 불러들여야 한다. 관객은 단지 영화를 보러 오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와 함께 그 시간을 ‘보내러’ 온다. OTT가 혼자 즐기는 콘텐츠라면, 극장은 함께 즐기는 문화다. 이 차이를 명확히 살릴 수 있을 때 극장은 다시 살아난다.
OTT와의 공존
흥미로운 점은 OTT가 확산되면서 역설적으로 ‘작은 영화’를 극장에서 찾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거대한 블록버스터보다는, OTT에서는 보기 어려운 예술영화나 독립영화를 스크린으로 직접 보고 싶어 하는 관객층이 형성되고 있다.
서울아트시네마, 씨네큐브, 에무시네마 같은 예술영화관들은 이런 흐름을 잘 보여준다. 이곳에서는 단순히 영화를 상영하는 것을 넘어, 감독과의 대화(GV), 영화 비평 강연, 테마 기획전 등을 운영하며 관객과의 관계를 만들어간다. 관객은 단순히 소비자가 아니라 ‘문화의 일원’으로 참여한다.
이런 시도는 극장의 생존 전략으로서 매우 의미가 있다. 상업영화 중심의 멀티플렉스가 포화 상태에 이른 지금, 극장은 자신만의 개성을 강화하고, 특정 취향과 문화를 공유하는 사람들을 위한 ‘커뮤니티 공간’으로 변화할 수 있다.
결론
OTT의 등장은 분명 영화 산업의 판도를 바꿨다. 하지만 그것이 극장의 종말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이 시대의 극장은 진화하고 있다. 과거처럼 일방적인 상영 공간이 아니라, 감각과 감정을 교류하는 복합적인 문화 공간으로 변하고 있다.
결국 관객이 극장에 가는 이유는 단순히 영화를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경험’을 느끼기 위해서다. 거대한 화면, 웅장한 사운드, 그리고 옆자리에 앉은 낯선 사람들과의 동시적 감정의 교류. 이것은 아무리 기술이 발전해도 집에서는 느낄 수 없는 감각이다.
극장은 이제 다시 자신만의 존재 이유를 증명해야 한다. 영화가 단순한 콘텐츠가 아니라 예술임을, 그 예술이 관객의 삶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를 보여줘야 한다. OTT가 효율과 편리함을 상징한다면, 극장은 감정과 기억을 상징해야 한다.
OTT 시대, 극장은 여전히 살아 있다. 다만 예전의 방식이 아니라, 새로운 이야기와 경험으로. 그리고 그 변화의 중심에는 여전히 ‘사람’이 있다.